밖에서 벌어 오는 수출기업들이, 정작 안에서는 미궁에 서 있었습니다.
“AI 잘 쓰시네요”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. 그런데 잘 쓴다는 게 정확히 뭘까요.
결론은 이렇습니다. 문제를 발굴하고, 우선순위를 정하고, 맞는 수단을 붙이는 것. 도구는 그다음입니다. 우리는 이걸 ‘적정 AI’라고 부릅니다. 가장 앞선 기술이 아니라, 그 환경에 가장 맞는 기술.
이 고민의 전체 이야기는 링크드인에 적어 두었습니다. 글 읽기 →
테세우스가 미궁에서 살아 나온 건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. 아리아드네가 쥐여준 실타래 하나, 들어온 길을 잃지 않을 가장 단순한 것 하나 덕분이었습니다.
현장의 회사들도 대부분 미궁에 서 있었습니다. AI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서요. 비싼 ‘전체 지도’를 팔겠다는 제안은 많지만, 지도로 나올 수 있었다면 애초에 미궁이 아닙니다. 필요한 건 실 한 가닥입니다. 잡히면 그다음은 회사가 스스로 갑니다.
우리 역할은 테세우스가 아니라 실을 건네는 쪽입니다. 걸어 나가는 건 회사가 직접, 우리는 그 실이 끊어지지 않는지 끝까지 지켜봅니다.
우리가 수출기업의 실마리가 되겠습니다.
가장 앞선 답이 아니라, 지금 잡을 수 있는 한 가닥을 찾는 일.
SILMARI — THE CLUE PROJECT
하나만 덧붙이면, 테세우스는 헤엄쳐 가지 않았습니다. 배가 있었고, 함께 노를 저은 선원들이 있었습니다. 그 이야기는 페이지 끝에서 다시 합니다.
미궁은 비유만이 아닙니다. 컨설턴트로 보낸 1년, 서른 곳의 현장이 꼭 그랬습니다. AI가 필요 없는 회사도, 어디서부터 할지 아는 회사도 거의 없었습니다.
“써야 하는 건 아는데, 우리 회사에서 뭘 시켜야 할지를 모르겠어요.”
건어물 · 수출 3년차“견적을 받아봤는데 오천만원이라더군요. 뭘 해주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.”
조미김 · 수출 7년차“작년에 한번 해봤는데, 업체 빠지고 나니까 아무도 못 쓰더라고요.”
수산가공 · 수출 5년차수출기업은 밖에서 벌어 오는 회사들입니다. 내수가 좁아지는 나라에서 누군가는 바깥에서 벌어 와야 하고, 현장에서는 한두 사람이 여러 나라의 바이어·서류·통관을 다 감당하고 있었습니다.
AI로 나라를 구할 생각은 없습니다. 다만 이런 회사의 일주일에서 몇 시간을 덜어내면 그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는 압니다. 다음 바이어 회신, 다음 박람회, 다음 계약으로요.
순서를 바꾸지 않습니다.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, 그 회사에서 계속 돌아가는 게 목적이라서요.
대표님·실무자와 업무를 시간 단위로 쪼개,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을 찾습니다. AI보다 다른 게 먼저면 그렇게 말씀드립니다.
업무 하나를 골라 무엇을 만들고 무엇이 남는지 시작 전에 문서로 적고, 금액도 거기서 확정합니다.
만드는 과정을 실무자 한 분이 옆에서 봅니다. 과정을 본 사람이 있어야 나중에 직접 고칠 수 있으니까요.
우리가 빠진 뒤에도 회사에서 혼자 돌아가야 끝난 겁니다. 3개월간 월 1회 확인하고, 안 돌아가면 우리 책임으로 다시 봅니다.
이 시장에는 가격표가 없습니다. 그래서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먼저 적어 둡니다. 거절할 수 있어야 기준입니다.
한 번에 크게 벌이지 않습니다. 기준과 사람을 먼저 맞춘 다음에 규모를 키웁니다.
현장에 나갈 때 필요한 AI 최소 역량을 팀 전체가 같은 수준으로 맞춥니다. 역량을 맞추는 시간이자, 서로가 같이 배를 탈 사람인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.
모집 중정부기관과 함께 수출기업 대표님들을 모시고 AI 교육을 엽니다. 팀이 처음으로 현장에 서는 자리입니다.
기관 협의 중정부 지원사업 수혜가 확정된 기업부터 순서대로 들어갑니다. 선원 한 사람이 기업 한 곳을 전담하고, 일이 커지면 팀이 함께 붙습니다. 연간 12–15건 상한.
여러 회사에서 똑같이 필요했던 것은 매번 새로 만들지 않고 도구로 만들어 더 싸게 드립니다.
본 프로젝트 비용은 각 기업이 참여 중인 정부 지원 프로그램 예산 안에서 집행합니다 · 기업 자부담 20% 수준 (프로그램·기업 규모에 따라 변동)
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봉사가 아닙니다. 제대로 돕고, 떳떳하게 값을 받습니다. 받은 것을 나누는 규칙도 시작 전에 정해 두었습니다.
정부 지원사업마다 AI 예산이 크게 잡혀 있고, 그 예산을 보고 온 공급자도 많습니다. 설명 없는 견적서가 돌고 구축이 끝나면 연락이 끊기곤 합니다. 손해는 정보가 부족한, 수도권 밖 기업의 몫입니다.
그래서 우리가 그 좋은 팀이 되기로 했습니다. 예산은 이미 배정되어 있으니 필요한 건 믿을 팀뿐입니다. 일한 값을 받고, 규칙대로 숨김없이 나눕니다. 그래야 좋은 사람이 남고, 팀이 기업 옆에 오래 있습니다.
약속했던 배 이야기입니다. 테세우스에겐 배와 선원이 있었습니다. 그래서 이 팀의 이름은 선원입니다. 올해 가을 석 달을 같이 맞춰볼 4–5명을 찾습니다. 경력·자격증은 보지 않습니다. 아래 셋이 전부입니다.
수도권 밖의 공장과 사무실로 직접 갑니다. 화면 너머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.
규모는 작아도 밖으로 나가 벌어 오는 회사들입니다. 여기서 줄인 한 시간이 어디에 쌓이는지 아는 분.
이 일의 절반은 듣는 일입니다. 실마리는 늘 대표님과 실무자의 이야기 속에 있고, 흘려듣지 않는 귀가 좋은 말솜씨보다 귀합니다.
시즌 0이 끝났을 때, 선원에게 남는 것
포트폴리오용 데모가 아니라 실제 회사가 매일 쓰는 결과물, 그리고 그걸 만든 과정의 기록이 이력이 됩니다.
1–3월 정부기관 협력 워크숍에서 직접 세션을 맡습니다. 가르쳐 본 사람이 제일 많이 배웁니다.
2027년부터 기업 한 곳의 전담 선원이 됩니다. 정산은 위 실마리 규칙 01대로, 남은 전액을 1/n.
석 달 동안 서로 검증한 4–5명. 혼자서는 못 가는 데까지 같이 갑니다.
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. 같은 곳을 보고 있다면, 이 항해에 함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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